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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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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작성일18-07-01 18:55 조회6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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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에코의서재 #창조성  #상상력  #삶  #놀이 

생각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창조와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놀이 탐구

 

 

P. 229-232

생명을 위한 예술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후세의 사랑을 받을만한 작품을 창조하고자 한다. 작품의 생명력은 질을 가늠하는 주된 요소가 되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의 미래는 어둡다. 무서운 무기들이 사방에 깔렸다. 공기, 물, 토양, 도시는 해가 갈수록 독성을 더한다. 지구 전체의 생명 유지 체계가 위기에 처했다. 후손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게 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세상을 살리려면, 그리고 예술을 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과 토론을 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수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힘을 보태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상황을 한층 악화시키는 결과를 빚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지구 생태라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다루기에 우리의 이성이나 감정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 인간이라는 종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상상력이다. 파괴의 유일한 해독제는 창조성이다. 이는 절박한 게임이다. 고갈상태에 다다르느냐 완전히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대다. 후손의 사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예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와 밀접한 관계다. 예술에는 놀이, 진지함, 연결성, 구조, 전체성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목표는 개인의 창조성을 넘어서고, 예술을 넘어선 행동이다. 일단 이를 '상상력 해방 전선'이라고 불러보자.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예술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창조력과 분리되어 있던 삶의 영역에서 창조력을 발휘한다는 의미다. 국제 정치, 수많은 환경적 경제적 재난, 광신적 원리주의와 인종주의 등을 보라. 전통적인 개념과 사고방식이 낳은 부정적인 결과물들이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창조적 태도, 가능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노는 태도가 필요하다. 삶의 다른 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정치 분야에서 창조성을 가로막는 것은 두려움이다. 인류가 서로 간에, 그리고 자신을 품어주는 지구와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는 것은 해묵은 사고 틀에 꽉 묵여버린 탓이다. 전체주의 국가나 근본주의 종교가 자유로운 의사표현, 영화, 예술, 기타 표현과 소통 수단을 제일 먼저 억압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특히 유머는 절대 금지된다. 


  창조성은 순간에 머물지 않고 확장된다. 


  현재 지구의 상태를 보면 핵심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어야만 한다. 기적이 필요하다. 다음 세대들은 창조성에 적응하고 진화의 도약을 이루어야한다. 개개인의 예술 활동을 통해 우리는 창조적 돌파구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강박을 연습으로 바꾸며 영감의 순간을 늘려나간다면 일상적인 삶에서도 창족성이 믿을만한 도구가 될 것이다. 

  "찾아 헤매던 적이 정작 내 안에 있더라"라는 말이 있다. 살아남으려면 우리도 이를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 존재하는 위대한 창조자를 만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창조적 영감은 직업 예술가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 창조 능력을 넘겨버리는 것은 의사에게 치료능력을 넘겨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전문가들은 필요하다. 지식, 전통, 자원을 축적하려면, 또 우리 자신의 치료 능력에 촉매제 역할을 맡게 하려면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치료, 진정한 창조성은 우리 안에 있다. 그 능력을 버린다면 인류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삶의 미적 측면은 예술을 창조하는 이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의 온갖 현상에 대해 타고난 감각을 마음껏 발휘할 때, 그리고 그 결과 생명이 온갖 행복에 가득 찰 때 삶은 아름답다"라고 한 시인 허버트 리드 경의 말을 보아도 그렇다. 

  창조성은 순간에 머물지 않고 확장된다. 그리고 개인에 머물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확장된다. 우리는 관객도 희생양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대한 계획을 따로 세울 필요는 없다. 삶의 해법은 점점 더 많은 개인이 삶과 예술에서 창조의 길을 택하고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