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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전통문화) '혜안' 김정훈 충남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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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작성일18-11-07 10:16 조회2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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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덩치 큰 막둥이, 철들다 

2. 흑인 음악과 섹시한 남자 김정훈

3. 부여를 대표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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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막둥이, 철들다

저는 원래 고향이 부산이에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부산에서 자랐고, 삼형제 중 막둥이로 자랐어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말썽이 많았던 학생이었어요.

당시 저희 집은 2,3 만원짜리 신발을 사는 것도 부담스러울 만큼 형편이 어려웠는데,

어린 마음에 유복한 집안 친구들이 싫었어요. 가난한 집안 형편도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래서 말썽도 많이 피웠고, 전형적인 말썽쟁이 막내아들이었어요.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때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어요.

부모님이 경남 고성으로 귀향하시게 된거예요.

철부지 막내인 저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 둘, 이렇게 삼 형제만 부산에 남아 살게 되었죠.

 

#운동을하다

말썽쟁이에 천방지축이었지만 딱 하나 좋아하는 게 있었어요.

바로 운동. 어릴 때부터 덩치도 크고, 체력도 좋았어요.

신체 조건이 좋다 보니 태권도, 검도, 킥복싱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체육대학교에 입학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입시를 위해 본격적으로 유도까지 배우기 시작했었죠.

학교가 끝나면,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이렇게 지내다 보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살가운 사이로는 못 지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죠.

아버지께서 간암에 걸리신 거예요.

 

#사람은무엇으로사는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전 부모님이 계신 경남 고성으로 돌아갔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병색이 짙은 아버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언제나 계실 줄 알았는데,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왜 하필 나의 아버지께서 병에 걸렸을까, 고민했죠.

그러다가 결론은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돈이 많았다면 여유로운 생활에 스트레스도 덜 받으셨을 것이고,

아픔을 술로 묻지 않고 병원은 제때 다니셨을 테니까요.

 

체대에 들어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철부지 고등학생이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이 된 순간이었죠.

 다시 부모님과 살면서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자 공부에 재미가 붙었어요.

운동보다 공부가 더 재미있었죠.

 고3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입시 공부를 했는데, 아버지께서 관심이 많으셨어요.

저에게 한국전통문화대학교를 알려주신 것도 아버지셨어요.

학교 입학 당시 등록금이 가장 저렴했고,

조경분야 전망이 밝았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입학을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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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음악과 섹시한 남자 김정훈

 

#힙합씬의루키를꿈꾸다

설레는 마음으로 경남을 떠나 충남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젊은이의 자유와 지성이 있는 대학 생활을 생각하고, 첫 수업을 받던 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어요.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교수의 말을 신처럼 떠받드는 학교 분위기에 충격받았죠.

그때부터 시대의 저항 정신을 담고, 가난과 역경을 대변하는 '흑인음악'을 동경하게 되었어요.

힙합 씬의 루키가 되기 위해 학교에 없던 힙합 동아리 'Soul'을 만들어 활동했어요.

한 번은 학교를 관두고 홍대에서 일하며 음반을 내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 일은 나중에도 할 수 있으니, 지금은 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을 해라"

라고 하셨고, 그렇게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경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했어요. 군대를 다녀오니 직업에 대한 고민이 커졌죠.

저는 문제가 생기면 직접 문제 속에 들어가 해결하는 성격이었어요.

학교에서는 실무적인 부분을 배울 수 없으니, 직접 현장을 찾아다녔죠.

졸업한 대학 선배를 찾아다니면서 스스로 기회와 선택의 폭을 넓혔어요.

많은 선배들을 만나 밥도 얻어먹고, 현장일도 경험했어요.

그러던 중에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일이 있었어요.

경남 합천에 위치한 "해인사"에서 일하던 선배가 있었는데,

선배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죠.

그러다 선배가 "정훈아 부자가 되려면 경제를 잘 알아야 해" 라고 말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학교에 경제 동아리를 만들게 되었던 것 같아요.

 

경제 동아리로 활동하면서 카이스트 창업캠프에도 참가하고,

다른 학교 경제 동아리와도 활발하게 교류했어요.

경제를 배우면서 "이런 이론이 과연 적용이 될까?"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대한 해답도 찾게 되었죠. 또 부여군 활성화 재단에서 주최했던

부여 청년 소셜 벤처 사업에 참여했는데요. 이때 사회적 경제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자본은 충분하지 않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대안적인 경제라는 걸 배웠죠.

그 당시 전국적으로 청년몰이 활성화되던 시기였고, 부여에도 이를 적용하고 싶었어요.

부여 시장에서 카페도 차리고, 다양한 청년 창업가들이 입주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겉보기에는 실패였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회적 경제와 사업에 대해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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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대표하는 청년

 

#게스트하우스를열다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어요.

혜안이 운영하는 여행자 숙소 '마당' 게스트하우스를 연 것이죠.

비어있던 건물을 '혜안' 동료들과 바꿔 나갔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었죠.

 

드디어 게스트 하우스 오픈 날,

저는 다시 좌절을 맛봤어요. 부여가 관광 비수기에 들어간 것이죠.

숙박객은 없고, 고정 운영비는 나가야 했기 때문에 투잡을 뛰었어요.

수박 하우스에서 일하며 고정 운영비, 마무리 공사에 필요한 돈을 충당했어요.

또 한편에서는 게스트하우스 홍보에 열을 올렸어요.

그리고 2016년 여름, 드디어 숙박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여행자 숙소 마당은 부여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시는 곳이에요.

 

#운동人 #힙합人 #그리고지금의나

운동과 힙합을 거쳐 경제 동아리 혜안이 제 꿈의 마침표이자 시작점이 되었어요.

2017년 사회적 기업으로 정식 발돋움한 혜안은 문화재 관련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제작 중이에요.

기존 문화유산 사업이 전통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에 추첨이 맞춰져 있었다면,

혜안은 트렌디하고 재미있는 영상 컨텐츠를 통해

사람들이 문화재를 쉽게 접하고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관심과 애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면 문화재 보호와 보존은 당연하게 이어지리라 생각해요.

 

최근에도 문화재 관련 콘텐츠인 '삼충사', '백제문화제OO' 등의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있어요. 저는 사회적 기업가이자 지역의 청년으로 지역의 전통 문화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글로벌하고 트렌디한

전통문화 컨텐츠를 계속해서 제작하려 해요.

또 그것이 공공의 이익이 되는 사업이 되고,

이를 통해 지역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 넣어 줄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궁극적으로는 지역에서 살고 싶지만 비빌 언덕이 없는 청년들에게 든든한 멘토이자,

꿈을 향해 한계단씩 올라가게 도와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작은 동아리였던 혜안이 사회적으로 우뚝 서는 모습 함께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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