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활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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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 선정사업] "소녀상에 담긴 11개의 이야기" 아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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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충남공익활동지원센터 작성일19-08-14 15:26 조회1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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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하루 전인 8월 13일 아산YMCA 청그라미홀에서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작가의 뜻깊은 강연이 열렸습니다. 김운성 작가는 2011년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하는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첫 번째 소녀상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도 참가했습니다. 현재 트리엔날레의 ‘표현의 부자유, 그 후’ 특별전에 설치된 소녀상은 일본 정부와 극우단체들의 방해로 전시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광복절과 기림일을 앞두고 아산과 충남의 많은 시민들이 김운성 작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소녀상 설치에 얽힌 이야기와 경험을 들으면서, 청중들은 화가 나는 순간에는 탄식을 하고, 뭉클한 순간에는 박수도 치면서 강연을 경청했습니다. 폭염경보가 내린 날씨만큼이나 열기가 가득했던 강연장은 에어컨을 수시로 조절해야 할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아래부터는 김운성 작가의 강연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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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에 담겨있는 의미들

 

애초에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하여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우려던 것은 ‘평화비’ 즉 비석이었습니다. 그 후 제작하는 과정에서 조형물과 비석을 함께 만들기로 했고, 조형물은 피해자 할머니가 일본을 응징하고 혼내주는 모습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작업을 하는 김서경 작가(김운성 작가의 부인)가 할머니들이 끌려갔던 나이의 작은 소녀의 모습으로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일본 대사관 앞에 앉아서 ‘부끄럽지 않으냐’며 응시하면서 사죄를 촉구하는 지금 소녀상의 모습으로 세워졌습니다.

 

소녀상에는 많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소녀의 머리칼 끝은 거칠게 끊어져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인연이 툭툭 끊겨버린 당시의 할머니들의 마음이고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했다는’ 일본의 거짓말에 대항하는 표현입니다. 소녀의 어깨에 앉은 는 평화의 상징이자 하늘과 땅을 잇는 연결자를 뜻합니다. 즉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살아계신 할머니들을 이어주고, 우리와 할머니들을 이어주는 의미입니다.

 

소녀는 주먹을 쥐고 있습니다. 원래 김서경 작가가 제안했던 소녀상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녀상 제작과 설치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일본의 방해에 굴복하지 않고 반드시 작업을 끝내자는 의지를 담아 주먹을 쥔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과와 보상 문제를 기필코 해결하자는 굳은 의지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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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발꿈치를 들고 있고 그림자는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이는 반성없는 일본의 모습에 대한 분노를 담기도 했지만, 그 동안 할머니들의 문제를 외면했던 우리들의 반성이 담겨있습니다. 해방이 되고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들은 집과 마을에서 외면과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들은 이 마을 저 마을로 도망치듯 밀려나며 살아야했고 결국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타향에서 숨어 살아야했습니다. 1992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기까지 소녀들은 들었던 수많은 모욕을은 수십 개의 파편이 되어 그림자로 쌓였습니다.

 

“지금도 할머니들은 이름을 숨기고 사십니다. 공개 증언을 했던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며 조용히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가시는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할머니들을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녀의 옆에는 빈 의자가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외로운 첫 증언을 하시고 같이 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찾으셨는데, 이제는 돌아가신 김학순 할머니와 함께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함께 앉아 일본 대사관을 같이 응시하겠다는 ‘약속의 자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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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녀상이 세워지던 날

 

소녀상은 원래 ‘평화비’였습니다. 평화비라고 적힌 글씨는 너무 반듯해서 어느 서예가가 쓴 것으로 알게 되지만, 사실은 피해자 중의 한 분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쓰신 것입니다. 작가는 내심 삐뚤빼뚤한 글씨를 기대했었다고 합니다. 정성으로 쓰신 그 글귀는 모든 소녀상에 적혀 있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첫 소녀상은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작업이 시작된 새벽부터 빽빽하게 많은 기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엄청난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지만, 그 기자들의 대부분은 일본 언론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한일 간의 이슈가 되고 국내에서도 찬반여론이 일자 그제서야 국내 언론의 관심이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외교적 갈등을 이유로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이 소녀상을 지키기에 나섰고, 특히 할머니들이 끌려갔던 나이대의 어린 여학생들이 영하의 추운 겨울에도 밤샘농성으로 지켜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설치된 소녀상은 1점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전국과 해외로 펴저 지금은 8~90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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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에 관한 10개의 이야기

 

① 소쿠리와 호미가 있는 소녀상

경남 남해에는 할머니의 이름을 딴 숙이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당시 13살에 갯벌에서 조개를 캐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던 박숙이 할머니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소녀의 옆에는 조개를 캐던 소쿠리와 호미가 그대로 놓여있고 손에는 동백꽃이 담겨있습니다. 할머니는 1916년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의 유언은 소녀상 아래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② 멀리서 찾아온 발자국

어느 날 중국 작가들이 김운성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왔습니다. 소녀상의 빈 의자에 중국 피해자 소녀상을 앉혀도 되겠냐는 허락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히려 작가는 흔쾌히 공동작업을 제안했고, 한중 소녀상이 서울 성북구와 상해 사범대학에 설치되었습니다. 조형물에는 먼 길을 찾아온 중국 소녀의 발자국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③ 나비가 된 소녀

이화여대 학생들도 소녀상을 만들고자 찾아왔습니다. 학생들은 학생들의 손을 잡고 날아가는 모습의 소녀상에 나비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애초 이화여대 정문에 세우려고 했으나, 학교 측에서 허락을 하지 않아 정문 밖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세워졌습니다. 현재 국내 대학 내에 세워진 소녀상은 전무하다고 합니다.

 

④ 유관순의 후배들이 세운 238개의 소녀상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여고의 동아리 ‘주먹도끼’의 학생들이 학교 내에 소녀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소녀상 세우기 운동을 펼쳐 금새 100개가 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동참하기 시작했고, 정부에 등록된 238분의 할머니들을 의미하는 238개의 작은 소녀상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⑤ 미국에서 응원을 기다리는 소녀상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 소녀상이 설치되었습니다. 글렌데일의 의회와 시장은 이 문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전쟁피해 여성의 문제라는 데 동감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우익들의 협박과 로비에 시달리며 재판까지 갔던 철거문제는 마침내 일본 측의 패소로 결론이 났습니다. 하지만 글렌데일 시청은 여전히 철거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글렌데일에서는 한국민들의 응원 메시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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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일방적 위안부 합의’를 꾸짖는 소녀

2015년 정부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10억 엔을 내서 재단을 설립하고, 대신 한국 정부는 소녀상을 철거하겠다는 밀약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전북 익산에는 2015년의 협상을 응징하는 소녀상이 세워져있습니다. 소녀는 이 합의문을 깨뜨려 밟고 서서 할머니들의 28년간의 요구가 적힌 선언문을 들고 있습니다. 

 

⑦ 이름이 사라진 소녀상

독일 레겐스부르크시 인근 비젠트 공원에 있는 소녀상에는 평화비 문구와 설명문이 없습니다. 애초 동상은 시내에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일본의 항의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러자 설립의 취지에 공감하는 비젠트 공원의 소유주가 개인적으로 공원에 설치했고, 독일주재 일본 영사가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울면서까지 읍소했다고 합니다. 이에 공원 소유주는 한국 영사관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철거해도 상관없다”였습니다. 현재 소녀상은 어떤 설명문도 적지 않는 조건으로 철거를 피하고 남아 있습니다.

 

⑧ 경찰도 어쩌지 못한, 담요를 던져준 사람

일본 대사관에 첫 소녀상을 설치하고 한국 정부는 경찰을 동원하여 철거를 시도했습니다. 이에 어린 학생들이 소녀상 지키기 농성에 들어갔고, 엄동설한의 추위에 담요 하나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학생들의 담요를 뺏으며 자진해산을 노렸습니다. 추위에 떨며 소녀상을 지키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한 사람이 나타나 담요들을 던졌습니다. 경찰도 그를 감히 막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가수 이승환씨였습니다.

 

⑨ 이틀 만에 13억이 모이다

작은 소녀상을 보급하는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금형 제작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김운성, 김서경 작가는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습니다. 소심한 김운성 작가는 목표모금액을 500만원으로 하려고 했으나, 대담한 김서경 작가가 1억으로 설정하자고 했습니다. 이게 될까 싶었지만... 단 이틀 만에 1억3천만 원이 모였습니다. 이 모금은 최종 9,003명이 참여하여 2억6천6백만 원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작비를 제외한 모금액은 할머니들을 돕는 단체로 전달되었습니다.

 

⑩ 0살의 희생자

김운성, 김서경 작가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을 사과하는 피에타상을 현지에 기증하는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베트남 현지에는 학살을 기억하는 ‘증오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증오비에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중에는 0살의 영아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여성과 아이들인 희생자를 기려, 모자의 모습으로 피에타 상을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한국 정부의 불허와 비협조로 현지 전달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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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나고야 소녀상과 표현의 자유

김운성 작가는 현재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는 나고야 아이치현 트리엔날레 전시중단 이야기로 강연을 마무리 했습니다. 해당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 그 후’는 한국의 일본 과거사 관련 작품들뿐 아니라 천황제를 반대하는 작품,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다룬 작품, 평화헌법 9조의 가치를 담은 작품 등 일본 내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예술작품들을 초청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작가의 생각에는 일본이 그래도 자부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문화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일본일들의 수용태도라고 합니다.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고 시민들도 그 표현물들을 작품으로 수용하는 감상태도와 인식수준은 여느 나라들보다도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중단 사태가 던지는 일본 내의 파장이 크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술작품이 사회에 주는 메시지와 영향력은 중요한 것입니다.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8월 15일 <광복절>

 

1991년 8월 14일은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세상에 증언한 날입니다. 이 날을 기려 하루도 빠짐없이 시작된 수요집회는 올해 8월 14일로 1,400회가 되었습니다.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시는 할머니들을 대신해 주먹을 쥔 소녀상이 오늘도 일본 대사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일본 정부에게 “내가 바로 그 증거다!” 라고 외치는 할머니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피해자 중심의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게 될 징검다리 휴일입니다. 그 휴가의 하루 정도는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소녀상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충남에도 많은 곳에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내 주변의 가까운 소녀상을 찾는 사이트를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할머니들이 바로 우리들이고, 우리들이 바로 할머니들입니다. 진실은 손 놓아도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힘과 의지로써 지킬 때 비로소 지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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